한국의 인디밴드. 멤버 전원 1993년생으로 오혁, 임동건, 임현제, 이인우로 구성된 4인조 밴드. 2014년 9월 EP 「20」 으로 데뷔하였다. EP 발매 이후 매스컴 한번 안 타고 입소문으로 뜨기 시작하더니, 맥 드마르코, 하우 투 드레스 웰, 얼렌드 오여 등 해외 내한 아티스트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는 화제의 밴드가 됐다. 2015년 3월 리더인 오혁은 프라이머리와 같이 작업한 Lucky You!를 내놓으며 차트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4월 24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첫 공중파 데뷔를 했다.
2015년 2월까지는 홍대 라이브클럽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순식간에 인기가 치솟았다. 이제는 대형 락페스티벌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정도. 2015년 5월 두 번째 EP 「22」를 발매하고 명실상부 2015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15년 7월 2015 무한도전 가요제에 참가하며 화제의 정점을 찍었다! 다만, 무도 가요제 특성상 예능적인 부분이 빠질수가 없는데 그 방면에서 분량을 걱정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1], 정형돈과 한 팀이 되었는데 정형돈과 가요제를 한 팀들이 가요제 후에 전체적으로 잘 되고 있고 정형돈이 음악적인 면에서 꽤 다양한 장르를 소화 가능하기 때문에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서로 낯가리는 성격에 걱정스러운 시선이 조금 있다.
몇가지의 장르로는 정의할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을 보여준다. 펑크, 뉴웨이브, 기타 팝을 넘나드는 상당히 독창적인 사운드가 특징이다. 밴드의 장르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밴드에 대해 사람들과 밴드 스스로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해질 것이라는 멋진 대답을 주었다. 멤버 모두 실력이 상당하고, 특히 기타인 임현제가 아주 그루브있게 잘 친다.
YG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대한민국 남성 음악그룹이다. G-DRAGON, T.O.P, 태양, 대성, 승리의 남성 5인조로 구성 되어 있다. 그룹명은 우주의 대폭발이란 뜻처럼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006년 8월 19일 첫 싱글 〈Bigbang〉을 발표하였고, 9월 23일 음악 프로그램《쇼! 음악중심》에서 "La La La"로 데뷔하였다. 힙합 음악을 기본으로 한, 빅뱅은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거짓말"으로 한국의 음원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이라는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2007 MKMF 뮤직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였다.
빅뱅은 더 나아가, 추가적으로 발표한 "마지막 인사"와 "하루 하루", "붉은 노을"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그들의 경력과 인기를 성공적으로 끌어오르며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2008 MKMF 뮤직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였고,일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빅뱅은 노력의 결과, 제9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재팬에서 3개 부분의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성공적인 일본 활동을 마친 그들은 개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태양과 지드래곤은 솔로 음반을 발표하고, 지드래곤과 T.O.P은 GD&TOP이라는 힙합 유닛을 결성하였으며, 승리와 대성은 뮤지컬과 버라이어티 쇼에서 진행자로 활약하였고, T.O.P은 영화배우로서 좋은 평가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빅뱅은 2년만에 그들의 새 앨범 《Tonight》을 발표했다. 그러나 멤버들의 개인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짧은 활동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해 빅뱅은 아시아 가수 최초로 MTV 유럽 뮤직 어워드(EMA)에서 최우수 월드 와이드 액트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빅뱅은 그들의 가장 성공적인 앨범으로 평가 받는 《Alive》를 발표하며, 한국 가수의 음반 최초로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하였고, 2013년 초까지 진행되는 첫 월드 투어 《BIGBANG Alive Galaxy Tour 2012》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15년 빅뱅은 개별 할동을 마친 후 3년만에 완전체로 컴백하였고, 새 앨범 《MADE》 프로젝트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2016년까지 진행 되는 두 번째 월드 투어 BIGBANG 2015 WORLD TOUR [MADE]를 개최하였다.
2NE1(투애니원)은 YG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대한민국 여성 음악 그룹이다. CL, 박봄, 박산다라, 공민지의 여성 4인조로 구성 되어 있다. 2NE1은 2009년 3월 27일 빅뱅과 함께 싱글 "Lollipop"을 발매해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2009년 5월 6일 2NE1의 데뷔 싱글 "Fire"를 발매하고 2009년 5월 17일 《인기가요》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데뷔 시절 부터 2NE1은 섹시하거나, 귀여운 소녀이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었던 K-pop 걸그룹 계에서 제3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적 그룹이다는 평을 받고있다. 또한 2NE1은 단순한 아이돌로 취급당하기보다는 어엿한 아티스트로 인정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는 평론을 받고 있다.
국내 음원사이트 멜론 (웹사이트)은 "현재 한국의 걸그룹 중 가장 영향력이 높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팀을 꼽으라면 단연 2NE1일 것이다. 그들의 행보는 이미 한국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전 세계에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어 2NE1은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걸그룹이라 할 수 있다. 2NE1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 산업 전반의 아이콘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음악뿐 아니라 다른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걸친 그룹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2NE1 멤버 들이 걸친 옷과 신발, 장신구 등은 순식간에 '2NE1 스타일' 이라는 수식어로 팔려나가고 각종 잡지 화보와 광고에서도 2NE1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지금, 21세기 한국을 대표할 만한 가장 역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걸그룹이 바로 2NE1이다.." 라며 2NE1을 소개하고 있다.
2009년 7월 8일에는 첫 번째 미니 음반 2NE1 1st Mini Album을 발매해 타이틀곡인 "I Don't Care"로 《뮤직뱅크》에서 쟁쟁한 가수들을 이기고 5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2010년 9월 9일에는 첫 번째 정규 음반 To Anyone을 발매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면서 데뷔 1년만에 정상급 걸그룹 중 한 팀으로 자리잡았다. 1집의 타이틀곡은 "Can't Nobody", "Go Away", "박수쳐" 무려 3곡으로, 이 곡들 모두가 음악 프로그램 차트 1위에 오르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2011년 7월 28일에는 두 번째 미니 음반 2NE1 2nd Mini Album을 발매해 "Don't Cry", "Lonely", 〈내가 제일 잘 나가〉, "Hate You", "Ugly"와 같은 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2NE1은 2011년부터 일본 진출을 발표했고 2012년 첫 일본 정규 음반 Collection을 발매했다.
2012년 7월 2NE1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앨범 발매에 앞서 싱글 "I Love You"를 발매해 가온 디지털 차트 1위를 했다. 또한 2012년 7월 28일부터 7개국 11개 도시를 방문하는 첫 월드 투어 NEW EVOLUTION을 진행하였다. 2013년에는 싱글 "Falling In Love", "Do You Love Me", 〈그리워해요〉를 차례로 발매했다. 2014년에는 4년만에 두 번째 정규 앨범인 CRUSH를 발매하였고, 걸그룹 최초 두번째 월드투어 All or Nothing를 진행하였다.
경기도 부천시 출신으로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 1 에 출연하여 준우승을 했다.
2012년 5월 YG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이후, 2012년 10월 29일 디지털 싱글 《1.2.3.4》발매, 11월 4일 인기가요를 통해 데뷔 하였다. 2013년 3월에는 첫 번째 정규 앨범 《First Love》를 발매했다. 대표곡으로는 <1,2,3,4>, <허수아비>, <It's Over>, <Rose>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힙합 래퍼이다. 과거 Sniper Sound 및 Buddha Baby 크루 소속으로, Blockbuster Records 및 Blockbuster Records를 계승한 커뮤니케이션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특히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라는 가사를 트레이드마크로 한 그의 빠른 랩스타일은 힙합 매니아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과 '도전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그가 처음 낸 앨범인 Come Outside에 담긴 목소리는 매우 날카로운 하이톤이며, 지금과 같은 속사포 랩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으나, 마지막 트랙 곡인 Life Goes On에서는 어느 정도 빠르다 할 수 있는 랩을 보여준다.
이후로 그는 좀 더 안정적인 톤과 목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초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초반부터 빠른 랩의 매력을 종종 느껴왔으며, 빠른 랩을 하게 된 계기를 "나약함을 감추고 싶은 나 자신의 숙명"이라고 얘기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몇 년 간의 발음 연습은 물론, 꾸준한 운동을 통해 편한 호흡을 하는 법을 익혀왔다.
상당히 빠른 랩을 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의 특징인만큼, 그의 발음은 매우 정확하여 많은 이들이 "속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거의 다 들린다"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전문가의 평가에서도 "모음은 불분명하게 발음되는 부분이 있으나 자음은 거의 100% 정확해, 일반 아나운서보다 발음이 좋은 편이다" 라는 얘기를 들었다. 힙합 팬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의 스타일 같은 경우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며, 아웃사이더의 스타일을 비판하는 편에서는 속사포 밖에 할줄 모르는 반쪽짜리라는 래퍼라는 평가를 하는 반면, 아웃사이더의 스타일을 호응하는 편에서는 기술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의 래퍼, 빠르기만 한 래퍼가 아닌 "빠르기도 한 래퍼"라는 평가를 한다.
한편으로 그는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항상 "소통"이라며, 항상 진실되게 소통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한다고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타고난 가창력으로 이미 14살 때 <다우니 웨이 아우터 브로드웨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보컬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민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노래 실력이 한국에까지 소문이 나 대학교 2학년 때 한국 활동 제안을 받고, 대한민국에 1년만 머무를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으나 예상보다 오랫동안 활동했다.
1998년 1집 《Piece》로 데뷔하여 〈P.S. I Love You〉, 임재범과의 듀엣 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4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UCLA)에 입학하였으며, 2001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 편입학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가수로 활동하였으며 4집 《Op. 4》에 수록한 곡 〈꿈에〉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평범한 대학생으로 활동하다가 9년 만인 2010년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아이비리그 수재 클럽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에 가입했다.[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국가를 열창하기도 하였다.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중, 2011년 3월부터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에서 활동
2011년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에 초대 받은 박정현.
가수가 되기 위해 1996년경 UCLA 졸업을 하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왔다. 당시에는 인사말 외에는 전혀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건조한 LA에서 살아온 박정현은 습했던 여름 날씨를 처음 겪으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여행을 잘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고 외로웠다.
첫 앨범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8년 1집 《Piece》의 〈P.S. I Love You〉로 데뷔하였다. 프로듀서는 윤종신이다. 당시 윤종신은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윤종신은 박정현의 1집에 수록한 〈오랜만에〉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만나게 됐다.
박정현은 가사의 단어를 하나하나 공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가사가 좋다는 걸 깨닫고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윤종신을 만나려 하자 윤종신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두워서 차 안에서 문을 열고 조명으로 가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박정현은 윤종신을 재미있고 편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또한 1집 첫 녹음할 때 윤종신과 함께 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윤종신은 박정현에게 발음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가르쳐줬고 박정현이 수없이 틀려도 인내심을 갖고 대해줬다. 박정현은 윤종신에게 친절하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주요곡으로는 '나의 하루', 'P.S I love you',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이 인기를 끌었다.
임재범은 당시 박정현과 같은 소속사로서 "첫인상은 키도 크고 멋있었다"라면서도 "머리가 길고 수염이 덥수룩해 처음엔 무섭기도 했다"고 말하였다. 박정현은 이전에도 임재범 2집을 선물 받고 끊임없이 들은 적이 있다. 박정현은 팬이었지만 앞에서 팬이라는 말도 못 하였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녹음할 때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임재범이 1980년대 후반 영국에서 음악 활동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했고 임재범은 박정현에게 어려우면 영어로 말하라며 독려했고 영어로 디렉팅을 해주기도 하였다.
2002년 4집 〈꿈에〉로 인기를 굳히고, 2002년 월드컵 공식 가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전까지 박정현은 자신의 서투른 한국어 실력을 숨기고 싶어 했다.
열심히 외운 가사 외에는 한국말을 전혀 못 했고 한국어를 못 하는 박정현이 노래를 어떻게 이해하냐며 거부감을 보이는 시청자들도 있어 콤플렉스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공식 가수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날 받아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큰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계속 가수 활동을 하며 내놓은 4집은 박정현의 앨범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명반 100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철학
노래에 대해 '기교가 중요하냐, 감동이 중요하냐'에 대한 논란은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이야기지만 자신은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그런 화제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에 가서도 음식점에 가서도 음악 토론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쁘다고 말하며 정답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정현 - 공식 웹사이트 - http://www.parkjunghyun.com/
박정현 - 트위터 - http://twitter.com/L_Space76
박정현 다음 팬카페 (이쁜정현사랑) - http://cafe.daum.net/lenapark
박정현 공식 팬클럽 (Piece of Lena) - http://www.pieceoflena.com/
일본 레코드 회사 사이트 (유니버설 뮤직) - http://www.universal-music.co.jp/lenapark/
일본 팬 페이지 - http://www.geocities.jp/lenapark_ilenau/
The Free Dictionary - http://encyclopedia.thefreedictionary.com/lena+park
avex taiwan presents 박정현 - http://www.avex.com.tw/lena/index.asp